일상생활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게르마늄팔찌전도사 2023. 3. 4. 22:10

 

"노력하면 바뀌는 세상"

이 책의 저자는 이 달콤한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능력을 보고 따지는 세상이 "좋은 것"으로 바뀐 이 시대에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제껏 내가 얼마나 편협게 사고를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부끄러워졌다.

난 이제껏 모두에게 공정하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만들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상위계층이 아닌데도 말이다.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그럴 만 하니깐 그런 것이라고 혼자서 합리화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고 있다.

나 스스로 진보적이고,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 부끄럽다. 내가 지금 대학에 다니는 것도 노력으로만 왔다는 착각을 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은 내 노력 부족이었다는 착각. 노력한다면 바뀔 수 있는 세상이라는 착각

 

책을 읽으며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었는지 생각해보았다. 학벌로 차별받고, 직업에는 귀천을 따지는 게 당연해졌으며, 하물며 사람을 사는 곳으로 급을 매긴다. 연대는 점점 약화하고, 우리는 점점 고립되어 간다. 

대치동에서 공부한 아이와 기초생활수급자 아이는 모두 같은 수능을 친다. 하지만 그것으로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대치동에서 사는 아이는 좋은 선생님과 공부하며 좋은 교우관계를 맺고 좋은 어른을 볼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아이는? 이런 과정이 있지만 우리는 "수능"으로 노력을 증명하라 하고, 똑같은 시험을 치렀으니 공정하다고 착각한다. 정치인, 경제인들이 "하면 됩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기회는 평등하지 않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은 이제 불가능에 가깝다. 극소수의 경우만 보고 "봐! 하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기사를 검색했더니 서울대 신입 중 3명 중 2명이 수도권 출신이고, 10명 중 4명이 특목고, 자사고 출신이라 한다.

'트럼프는 승자와 패자에 대한 거친 발언을 내놓으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노라"고 했지만, 그가 말한 위대함의 비전은 지난 40년간 미국에서 활발한 공적 담론을 일으켰던 능력주의적 기획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실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이게 미국의 선택이구나 결국 그들도 이제 위선을 포기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그랬을까 고민을 깊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이 노동계급 사람들의 분노 표출이라고 말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포퓰리즘적 증오는 능력주의적 오만에 외국인혐오증, 인종주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적대감 등 한몫했다. 그들에게 사회적 상승의 담론들은 그런 이들에게 있어 약속이라기보다는 조롱이었다.'라고 말하고 이해가 되었다. 사회가 세계화 되면서 모든 나라들이 그렇게 변하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미국은 '아메리칸드림'을 바탕으로 이제껏 불공평함을 억눌러왔다. 유럽에서 사람들이 신분 상승이 쉬운가요? 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라면 가능하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유럽보다 많은 복지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개천에서 용 나기란 한국보다 미국이 더 어렵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실 다른 나라에서 실현하기 더 쉬운 현실이다. 그것에 노동계급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이제 더 이상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고 수십 번 다짐했지만, 난 번번이 그걸 실패했다. 학벌은 가성비 넘치는 스펙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자신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진짜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우월감에 휩싸여 승자처럼 오만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시로 나오는 정치인들이 연설 때 썼던 문구가 나를 너무 당당하게 만들었던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은 '겸손'으로 이 능력주의를 넘어서 모두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앞에서 엄청난 이야기를 한 것치고는 엄청 심심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할 조건이 만족되면 제비뽑기를 하자는 파격적인 얘기까지 제안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노력으로 입학한 것이 아니므로 오만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이걸 들으면서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조건의 평등"만이 우리를 승자/패자가 아닌 존귀한 삶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능력주의적 선별이 망쳐버린 평등의 유형이다. 능력주의는 지성과 교육을 고등교육 상아탑에 온통 몰아넣고 두고서, 누구에게나 그 상아탑에 들어올 공평한 경쟁이 보장되리라고만 약속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접근권 배분은 노동의 존엄을 떨어뜨리며 공공선을 오염시킨다. 시민 교육은 담쟁이가 넝쿨진 캠퍼스 못지 않게 지역 사회 대학, 지업 훈련소, 노조에서 잘될 수 있다. 향상심있는 간호사와 배관공들이 야심적인 경영 컨설턴트보다 민주적 논쟁에서 뒤떨어질 까닭은 없다.

이 구절을 읽고 박노해 시인이 떠올랐다. 나는 그 시대에 살지 않아서 체감되지 않지만 그가 노동자라는 것에 적지않아 충격받은 지식인이 많았다고 했다. 난 지금 그 당시 시절보다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민주적 논쟁을 잘 할 자신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얼마나 굴욕적이고, 오만하게 살았는지 다시 한 번 깨닳았다.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서 온 시민들을 공동의 공간과 공공장소에서 만나봐야한다. 또한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민주주의, 자유주의라는 이름 앞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가는지 알려준다. 책의 궁극적인 말은 '오만하지 말자.' 라는 뜻이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다 허상이고 사실 많은 운의 요소가 들어가며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조건의 평등으로 우리는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회에 있으면서 불편했던 점들을 살살 긁어 갈등이 해소되었다. 나는 이제 하나씩 오래걸리더라도 꾸준히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 나가야한다.

저자의 말대로 오만하지 않고 모두를 공감할 수 있기를, 나와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를.

불평등과 수십 년 동안의 세계화로 노동자가 떠안게 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오직 교육에만 집중하는 일은 심각한 역효과를 낳는다. ···· 노동자들에게 '당신의 학력이 어지기 때문에 그런 꼴이 된 것이다.'라고 말해줌으로써 능력주의자들은 사람을 승자/패자로 나누는 일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부지불식간에 학력주의를 조장한다. ···· 아무리 의도가 좋을지라도 결국 학력주의를 조장하고 학력 떨어지는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과 명망을 훼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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