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시즌 코리아 시리즈가 기억이 안 난다. 그때는 삼린이었고, 야구를 깊게 보지 않았다. 사실 이기는게 당연했던 시즌이라 당연히 이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도박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었고, 한국 시리즈에서 맥없이 주저앉은 게 충격적이었다.
야구를 각 잡고 보기 시작한 것은 16시즌 한창 3승 라이온즈 시절. 한 달에 3번밖에 이기지 못하며 그냥 희망 회로 자체가 없던 시즌이었다. 왜 하필 그때부터 야구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는지. 하나하나 승리가 간절해지고, 일희일비가 정말 심했었다. 왕조 선수들이 한둘씩 떠나가고, 아 진짜 어떡하냐... 하던 끔찍한 나날들이었다.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든다. 도박사건, 강민호 이적, 오승환 복귀, 18연패 등...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선수들도 아주 힘들었겠지. 한 시즌을 고통받지 않고 끝낸 적이 없었다. 21시즌에는 페넌트레이스 2위를 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게 처참하게 맞고 말았다. 그땐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좌절감을 겪었다. 사실 타이브레이크 때 아 큰일 났다고 느낀 타격감이었지만 플레이오프가 그렇게 끝날 줄은 정말... 정말 충격적이었는지 홈 직관을 했었지만 점수가 기억이 안 난다. 추워하면서 수건을 흔들었던 것, 마지막에 욕 한 번 했던 건 이외에 정말 경기력이 단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번 플레이오프 들어가기 전 타이브레이크 꿈을 꿨는데 kt 응원석에서 아파트를 부르고 있고 난 다시 기도하면서 제발 제발 하나만 하고 기도하고 있는 꿈이었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아직도 그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는지.
다른 시즌을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정말 더욱 끔찍한 나날들이었다.
사실 서서히 스며드는 패배 의식이 잠식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시즌 내가 가장 바랐던 것은 부끄럽게도 꼴찌 하지 않기였다. 가을 야구를 가고 싶으면 밑에 깔아줄 팀을 생각해 보라고 했었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불펜이 보강되었지만 아무리 봐도 다른 팀들은 거대하고 세 보였다. 내가 가장 패배 의식에 찌들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박진만 감독도 처음엔 불신했다. 이걸로 될까? 시범경기를 봐도 돌파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갑갑했다.
시즌 시작 전 미디어데이, 아무도 삼성에 우승 공약을 묻지 않았다. 선수들도 인터뷰에서 다들 이걸 자주 언급했고, 나도 서운했다. 시즌 시작 후 8연패를 하며 정말 꼴찌 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주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아무도 포기한 사람이 없었다는 걸 다시 보여줬다.
삼성이 상위권이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곧 떨어질 거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삼성은 힘들 거라고 했다. 사실 그때부터는 이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도 슬슬 인정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2위 했을 때도 업셋 당할 거라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니 우리가 약팀이면 이기고 이야기하든가. 플레이오프 내내 우리 팀 약하다고 소리가 나오니 얼마나 화가 나던지. 온갖 소리는 다 듣고, 심지어 라팍을 쓴 지 몇 년 만에 라팍이 부정 구장이라는 소리도 들어봤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항상 우리는 처 못 때리고 타 팀만 때려서 열나던 라팍인데. 매년 내가 하던 주장은 펜스를 뒤로 밀라는 거뿐이었다. 사실 이런 부정 구장 소리 듣는 것도 정말 신기했다. 시즌 내내 약팀이라고 분류 받은 걸 예상을 깨고 보란듯이 증명한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특히 너네 라팍 쓰니깐 홈런 자주 나오는 거라고 조롱당할 때 강민호 선수가 잠실에서 홈런을 쳐서 이기는 건 정말 통쾌했다. 박용택 해설위원 진짜 오늘 내내 계속 구장 이야기하더라...
모두가 우리가 질 거라고, 약팀이라고 했다. 하지만 잠실에서 엘도라도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까지 야구하게 된 건 삼성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제 기아가 무조건 이길 거라고 하겠지. 시즌 내내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열심히 묵묵히 자리에서 잘해줄 거라고 믿는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광주로 간다. 광주에서는 어떤 야구를 보여줄까 너무 설레고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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